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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형종이

엘시드 2024. 2. 17. 11:49

제가 예전에 사랑밭 새벽편지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2007년 (주)샘터사에서 발간한 "딩동, 사랑이 도착했습니다"에 실린 글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을 다시한번 느끼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형종이를 처음 본 것이 1984년 고등학교 입학식 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0여년전 일입니다.

당시 우리들은 아직 어린티를 벗지못한 채로 설레임 반, 기대 반으로 고등학교 입학 첫날을 맞이했습니다. 중학교때에는 1, 2, 3학년 모두 담임 선생님이 여자선생님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오자 담임선생님이 남자선생님인 것이 우선 큰 변화였지요, 일단 운동장에 줄을서서 입학식을 마친 뒤 우리는 배정받은 반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미술을 전공하신 분이셨는데, 다소 간깐한 면이 있는 당시 TV 만화인 개구장이 스머프에 등장하는 가가멜을 닮은 분이었습니다. (그후로 우리는 담임선생님을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불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각자 번호를 부여받은 뒤 정해진 자리에 와서 앉았는데, 여기서 나는 지금 소개해 드릴 형종이를 처음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형종이는 번호가 1번이었는데, 머리는 스포츠형으로 짧았고, 뽀오얀 얼굴에 몸은 자그마해서 마치 3~4세 유아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형종이는 금방 우리반에서 귀여움(?)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현종이의 보들보들한 볼을 몇번 잡아당겨 본적이 있습니다. 어찌나 부드러웠던지, 어쨌든 형종이는 애기처럼 귀여운 외모에 성격도 좋고, 성적도 상위권이어서 학생들이나 선생님들 사이에 인기가 꽤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쾌한 날이 계속되던 어느날 저는 형종이의 애기같은 외모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기초라 담임선생님은 학생 부모님들을 학교로 불러 매일 진로상담을 했는데, 형종이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가 마침 같은 날이어서 상담 순서를 기다리면서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형종이 어머니는 제가 보기에 화려해 보이지 않는 그냥 평범하면서 약간 약해보이는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형종이는 선천적인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뛰거나 심한운동을 하지 못하고 겨울에는 수시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항상 어머니와 가족들의 염려와 보호속에 자랐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남들보다 신체적 성장이 느려서 그런 애기스런 모습이 되었던 것입니다. 형종이 어머니는 분식점을 운영하시며, 연세 많은 시어머니와 가족들의 생계를 꾸리고 계셨습니다.

 

형종이가 정상인으로 되기 위해서 유일한 방법은 심장이식 수술을 받느 것인데, 수술도 어려울 뿐더러 비용도 만만치 않으며, 또한 수술 차례를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기에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병으로 고생하는 자식이 평생의 질곡이었고, 마음속 한 구석의 고통이었기에 사랑하는 자식이 하루빨리 정상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최대의 소원이었습니다.

 

드디어 형종이의 수술일정이 정해졌고, 형종이는 학력고사 직후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대수술이라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들과 같이 대학에 입학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다음해에 건강한 모습으로 대학에 가야지 라는 위로를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느끼는 자유로운 대학 생활에 흠뻑 빠져있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아마도 87 4월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날 저녁 그동안 잊고 있던 형종이에게서 전화를 받았고 형종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입니다.

종합병원 영안실에는 오랜만에 고교 동창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형종이는 수술후 다행히도 경과가 좋아 몸이 정상인으로 회복되는 단계였습니다. 그사이 키도 좀 큰 것 같고, 애기같던 얼굴도 이제는 좀 어른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밤 우리는 그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얘기하면서 형종이 어머니의 돌아가신 사연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형종이 어머니는 형종이의 불편한 몸이 자신의 업보라 생각하고 평생을 가슴 조이며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인생의 목표는 오직 한가지, 자식이 완쾌되는 것, 그것을 위해 온갖 고생을 감수하며 병원 수술비를 모아오던 어느날 몸에 이상을 느끼게 되었고 진찰 결과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초기단계라 수술을 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컸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모아온 형종이 수술비를 써야만 하는 형편이라 어머니는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오직 신앙의 힘에 매달리며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고 또 빌었다고 합니다. 늙은 시어머니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고 태연해 보이기 위해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형종이 어머니는 이렇게 병마와 싸우며,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정성으로 드디어 형종이는 그렇게 바라던 수술을 받게 되었지만 정작 어머니는 끝내 세상과의 줄을 놓고야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저렸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이 글을 쓰자니 가슴 한켠이 뭉클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나 자신의 게으름을 가리운 채 살다보니 형종이와 연락이 끊어진 지도 꽤 여러해 되었습니다마는 결혼해서 가정 꾸리고 잘 살고 있겠지 라는 확신을 가져봅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나도 두 자녀를 키우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우리 부모님도 나를 이렇게 귀여워하며 곱게 키우셨겠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때마다 부모님에게 잘 해드려야지 라고 마음속에 몇번이나 새겨보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실상은 명절 혹은 집안 행사 때나 겨우 찾아뵙는게 현실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한번 찾아뵙고 맛있는 점심을 사드려야 겠습니다.